가방 지퍼를 하루에도 몇 번씩 열고 닫으면서 정작 지퍼를 자세히 본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냥 손잡이를 잡고 슥 올리면 끝이니까요.
그런데 지퍼를 아주 천천히 올려보면 생각보다 볼 만합니다. 양쪽에 따로 떨어져 있던 이빨들이 가운데 부품으로 들어가더니, 나올 때는 정확히 한 줄로 붙어 있거든요.
반대로 내리면 어떻게 될까요?
이번에는 한 줄이었던 이빨이 가운데를 지나자마자 양쪽으로 갈라집니다.
처음에는 손잡이가 이빨을 꾹 눌러서 끼우는 건가 싶었는데, 실제 핵심은 그 아래쪽에 있는 조금 두툼한 부품입니다.
이름은 '슬라이더'.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이 조그만 부품이 지퍼에서 가장 바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퍼가 편하다는 건 단추와 비교하면 바로 느껴집니다
지퍼가 없는 점퍼를 한번 상상해 볼까요?
단추를 달 수도 있고, 끈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지퍼가 없던 시절에는 그런 방법으로 옷이나 신발을 여몄고요.
문제는 횟수입니다.
단추가 여덟 개라면 하나씩 여덟 번 잠가야겠죠. 신발 끈도 구멍마다 끈을 통과시킨 다음 마지막에 매듭까지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퍼는 어떨까요?
이빨이 수십 개 달려 있어도 우리가 하는 행동은 똑같습니다.
손잡이를 잡는다. 그리고 한 번 당긴다.
끝이에요.
사람 입장에서는 한 번 움직였을 뿐인데, 그 사이 지퍼에서는 작은 결합이 수십 번 연속으로 일어난 겁니다.
생각해 보면 꽤 괜찮은 아이디어죠.
사람이 하나씩 해야 했던 일을 지퍼의 구조가 대신 처리하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요?
여기서부터 역사가 조금 재미있어집니다.
보통 어떤 물건의 역사를 찾아보면 “○○가 몇 년에 발명했다”라는 깔끔한 답을 기대하게 되잖아요?
지퍼는 그렇게 설명하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먼저 등장하는 사람이 엘리아스 하우(Elias Howe)예요. 재봉틀의 발전 과정에서도 유명한 인물이죠.
하우는 1851년 옷을 연속적으로 여밀 수 있는 장치와 관련된 미국 특허를 받았습니다.
그럼 하우가 우리가 쓰는 지퍼를 만든 걸까요?
그렇게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아는 지퍼가 그대로 등장해 널리 사용된 건 아니었거든요.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에는 휘트컴 저드슨(Whitcomb Judson)이 등장합니다.
1890년대 이야기예요.
저드슨은 특히 신발을 편하게 여미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했습니다. 여러 개의 후크와 결합 부분을 연속적으로 잠그는 방식이었죠.
지금 지퍼와 기본적인 목적은 꽤 비슷합니다.
“하나씩 잠그기 귀찮으니 한꺼번에 처리해 보자.”
다만 생김새까지 지금과 같지는 않았어요.
초기의 장치는 훨씬 복잡했고 제대로 맞물리지 않거나 쉽게 벌어지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아이디어는 괜찮았지만 매일 쓰기에는 아직 손볼 곳이 많았던 거죠.
우리가 아는 지퍼에 가까워진 건 그다음입니다
20세기 초가 되면 기드온 선드백(Gideon Sundback)이라는 기술자가 등장합니다.
지퍼의 역사를 찾아볼 때 꽤 중요한 이름이에요.
선드백은 기존 잠금장치를 계속 개선했습니다. 특히 양쪽에 있는 결합 요소가 더 촘촘하고 안정적으로 맞물리도록 구조를 손봤죠.
1910년대에는 그가 개선한 잠금장치와 관련된 특허도 등장합니다.
여기쯤 오면 생김새도 지금 지퍼와 상당히 가까워집니다.
양쪽에 작은 결합 요소가 늘어서 있고 가운데 슬라이더가 지나가면서 하나씩 맞물리게 만드는 방식이죠.
그러니까 지퍼의 역사는 이렇게 보는 게 편합니다.
누군가 천재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려 하루아침에 완성했다기보다, 여러 사람이 “이건 좋은데 여기서 자꾸 벌어지네”, “조금 더 쉽게 잠글 수 없을까?” 하면서 계속 고쳐나간 물건에 가깝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사용하는 생활용품은 이런 경우가 많더라고요.
최초의 아이디어와 지금 책상이나 옷장에 있는 완성품 사이에 꽤 긴 시간이 들어가 있습니다.
집에 있는 지퍼 하나를 가져와 보면 이해가 훨씬 쉽습니다
여기부터는 역사를 잠깐 내려놓고 지퍼 자체를 볼까요?
가방이나 점퍼에 달린 지퍼를 하나 골라보세요.
그리고 평소처럼 빠르게 올리지 말고 아주 천천히 움직여 보면 됩니다.
손으로 잡는 부분 바로 아래에 조금 두꺼운 부품이 보일 거예요. 앞에서 이야기했던 슬라이더입니다.
지퍼를 닫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양쪽 이빨이 슬라이더 안으로 들어옵니다.
여기까지는 따로 떨어져 있죠.
그런데 슬라이더 내부를 지나면서 양쪽 이빨이 서로 맞는 위치로 모입니다. 그리고 반대편으로 빠져나오는 순간에는 이미 한 줄로 연결돼 있어요.
지퍼를 열 때는 정확히 반대입니다.
한 줄로 들어와서 두 줄로 빠져나옵니다.
저는 이걸 작은 도로 합류 구간처럼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했습니다.
양쪽 도로에서 들어온 차들이 가운데에서 한 줄로 합류하는 것처럼, 양쪽 지퍼 이빨이 슬라이더를 통과하면서 하나의 줄로 정리되는 거죠.
물론 실제 지퍼에서는 이빨끼리 서로 걸리는 구조까지 있으니 완전히 같은 원리는 아닙니다.
그래도 눈으로 움직임을 이해하기에는 꽤 괜찮은 비유입니다.
지퍼에 천이 끼었을 때 세게 당기면 더 골치 아픈 이유
가방을 쓰다 보면 한 번쯤 이런 일이 생깁니다.
지퍼를 닫는데 갑자기 턱.
안 움직입니다.
살펴보면 가방 안쪽 천이나 옷감이 슬라이더에 물려 있는 경우가 많죠.
급하면 본능적으로 손잡이를 더 세게 당기게 됩니다.
그런데 대체로 상황이 더 나빠집니다.
왜 그런지도 이제는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슬라이더 안쪽은 원래 지퍼 이빨이 정해진 경로로 지나가도록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천까지 같이 들어가 버렸으니 움직이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죠.
그 상태에서 계속 힘을 주면 천이 더 깊숙이 끌려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힘으로 끝까지 밀어붙이기보다 슬라이더를 진행했던 방향의 반대로 조금씩 움직여 보는 편이 낫습니다. 동시에 끼어 있는 천을 살짝 당겨 빼주고요.
몇 초 빨리 닫으려다 지퍼 전체를 망가뜨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멀쩡하게 올렸는데 뒤에서 다시 벌어질 때도 있습니다
이건 오래 사용한 가방에서 종종 보입니다.
지퍼를 쭉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슬라이더가 지나간 뒤쪽이 다시 쩍 벌어집니다.
“아, 이빨이 망가졌구나.”
보통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요.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슬라이더가 오래 사용되면서 마모되거나 조금 변형된 경우에도 비슷한 증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슬라이더가 양쪽 이빨을 충분히 가까이 모아줘야 제대로 맞물릴 텐데,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거죠.
물론 이빨 하나가 빠졌거나 휘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지퍼가 이상할 때는 무조건 손잡이부터 잡아당기기보다 한번 쭉 살펴보는 게 좋습니다.
중간에 빠진 이빨은 없는지.
천이나 실이 끼어 있지는 않은지.
특정 구간에서만 문제가 생기는지.
이 정도만 확인해도 원인을 짐작하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그런데 우리 집 지퍼를 비교해 보니 모양이 전부 다릅니다
청바지 지퍼를 한번 보고, 그다음 백팩 지퍼를 봐보세요.
가능하면 점퍼와 필통도 같이 보면 더 재미있습니다.
전부 '지퍼'라고 부르지만 가까이서 보면 꽤 다릅니다.
금속 이빨이 하나씩 붙어 있는 것도 있고, 플라스틱으로 큼직하게 만들어진 것도 있습니다.
작은 코일이 이어진 것처럼 보이는 지퍼도 흔하고요.
크기도 천차만별입니다.
옷에 달린 지퍼는 작고 유연한 경우가 많은데, 두꺼운 가방이나 외투에서는 훨씬 큼직한 지퍼를 볼 수 있습니다.
이유는 어렵지 않습니다.
쓰이는 곳이 다르니까요.
옷에 사용하는 지퍼라면 몸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있는 유연성도 중요합니다. 반대로 무거운 짐을 넣는 가방에서는 튼튼하게 버티는 게 더 중요할 수 있겠죠.
평소에는 전부 똑같아 보였는데 일부러 비교해 보면 차이가 꽤 잘 보입니다.
이런 게 생활용품을 관찰하는 재미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쓰는 '지퍼'라는 이름도 나중에 붙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름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처음부터 사람들이 이 장치를 'zipper'라고 불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과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회사가 미국의 B. F. 굿리치(B. F. Goodrich)입니다.
1920년대 이 회사가 고무 부츠 등에 이런 잠금장치를 사용하면서 빠르게 움직이는 느낌을 주는 'zip'이라는 표현과 연결된 이름이 알려졌다고 전해집니다.
지금은 너무 익숙해서 그냥 물건의 원래 이름처럼 느껴지죠.
우리도 자연스럽게 “지퍼 올려”, “지퍼 열어놨어”라고 말하고요.
생각해 보면 물건이 일상에 완전히 자리 잡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복잡한 기술 이름은 잊히고 짧고 쉬운 이름만 남은 거니까요.
마무리
지퍼를 조사하기 전에는 저도 그냥 '양쪽 이빨을 붙이는 물건'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진짜 핵심은 이빨 자체보다 그 사이를 오가는 슬라이더에 가깝습니다.
사람은 손잡이를 한 번 움직일 뿐인데 슬라이더 안에서는 양쪽 이빨이 계속 위치를 맞추고 하나씩 결합합니다.
그래서 단추처럼 여러 번 손을 움직일 필요가 없는 거죠.
역사도 비슷합니다.
엘리아스 하우의 초기 아이디어가 있었고, 휘트컴 저드슨 같은 발명가가 실용적인 잠금장치를 만들려고 시도했습니다. 이후 기드온 선드백이 구조를 개선하면서 지금 우리가 아는 지퍼에 훨씬 가까워졌고요.
다음에 가방을 열 일이 있다면 딱 한 번만 천천히 지퍼를 움직여 보세요.
평소에는 1초도 안 걸려 지나가는 부분인데, 알고 보면 그 짧은 순간에 꽤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지퍼가 등장한 뒤에도 살아남은 훨씬 오래된 물건을 살펴보겠습니다.
바로 단추입니다.
그런데 단추의 역사에서는 단추 자체보다 더 재미있는 녀석이 하나 있습니다.
'단춧구멍'이에요.
FAQ:
Q1. 지퍼는 한 사람이 발명한 게 아닌가요?
한 사람의 발명품이라고 간단히 정리하기는 어렵습니다. 1851년 엘리아스 하우의 관련 특허가 있었고, 1890년대에는 휘트컴 저드슨이 연속식 잠금장치를 개발했습니다. 이후 기드온 선드백이 구조를 크게 개선하면서 현대 지퍼와 가까운 형태가 만들어졌습니다.
Q2. 지퍼를 닫았는데 중간이 다시 벌어지는 건 왜 그런가요?
이빨이 빠지거나 휘어진 경우도 있지만 슬라이더가 마모돼 양쪽 이빨을 충분히 맞물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천이나 실이 끼어 있는지도 함께 살펴보는 게 좋습니다.
Q3. 지퍼 이빨은 전부 금속인가요?
아닙니다. 금속뿐 아니라 플라스틱으로 만든 형태도 있고, 나일론 등의 소재가 코일처럼 이어진 지퍼도 흔합니다. 옷이나 가방처럼 어디에 사용하는지에 따라 적합한 종류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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